경험 5

친분, 카스트, 입시지옥.

이 글은 [전체주의 시대경험]이란 책의 <불량 정신의 찬란함>을 복사한 거나 다름 없겠지만.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경험에는 분명 한계라는 게 존재한다. 특히 그 한계가 고착화되어 있는 계층은 우등생들이다. 그들은 학교라는 한정된 경험 내에 머물며, 그 경험 내에 안주하려 한다. 그도 당연할 것이, 그러는 게 편하고 그러는 게 안전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학교 내에서 주어진 목표와 규칙을 준수하면 모범생 - 단어 자체에서 '선함'이란 뜻이 포함되어 있는 - 이란 평가를 얻기에 자신의 행동이 옳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들이 명문대에 진학하게 되면 그들 각자가 경험했던 세계가 너무 유사하기에 동질감을 느끼며 서로를 보듬게 된다.
 그들 대부분은 미리 정해진 규격에 의해 대량생산되고 있는 제품이다. 제도 안에서 주어진 목표를 향해 모든 걸 전념하고 있다는 점에선 꽤 능동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런 자기 제품화는 의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의지란 건 '운명을 향한 의지' 이며 운명과 기꺼이 맞서려는 생에 대한 의지를 포함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우등생은 삶의 다른 종류의 중대한 경험을 하지 못한 완전한 무의지적인 존재이다. 
 경험이란 건 대량생산품처럼 미리 정해진 틀에 따라 일방적으로 제조되는 게 아니다. 세계와의 만남을 통해 저항을 받고 상호교류 하는 것, 규칙으로 고정된 질서에서 벗어난 예기치 못한 일에 직면해 숨겨진 자신을 발견하는 게 경험이다. 교직에 종사하는 인간들은 이 점에 있어서 최악의 인간 부류인데, 초등-중-고-대의 과정을 거쳐 초-중-고에 뿌려지거나 초등-중-고-대-대학원-강사-교수의 형태로 계속 자동차 생산라인처럼 정해진 길 위만 걷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엔 심지어 자신이 누군가를 '가르치는'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에 자신을 성직자처럼 느끼고 행동하기도 한다. 이런 상태에까지 이르면 도저히 구제책이 없다.
 
 위의 우등생들은 단순히 한국에서의(소생이 한국에 있기에)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 좀 더 큰 세계, 예를 들어 지구 수준으로 간다면 지금 한국땅 위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상위 카스트에 속할 것이다. 지붕이 있고, 오늘 먹을 거리가 있고, 물과 전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될까. 

 내 친구는 불량아였다. 미국에서 사립고를 나오고, 아이비리그 대학을 들어갔다. 그 애가 살았던 집은 침실부터 부엌까지 걸어서 10분 정도였고 바닷가 별장엔 개인 해안이 있었다. 내가 부러워하기 짝이 없는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를 가지고 있었고, 옷은 항상 주문해서 입었다. 한국에 와서 놀 때도 한달에 2천만원씩 받았다.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버리고 아프리카로 떠났다. 거기서 사람 팔다리를 자르는 준의사 비슷한 목수로 지냈고, 의약품을 운송하는 트럭기사로 지냈다. 그는 결국 내전의 한가운데에서 칼을 맞아 다리가 잘린 후 감염되어 죽었다. 그는 내게 왜 그렇게 했는지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고 난 한 번도 물은 적이 없다. 그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 같고, 나도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도 지금은 상위 카스트에 있다. 그렇지 않다면 난 지금 숨을 쉬고 있지 못할 것이다. 비싸기 짝이 없는 몇 번의 수술과 입원, 계속적인 외래 진료를 별 무리 없이 받을 만큼 경제적 여유가 있다. 공부를 한 적은 없지만 어쨌거나 꽤 상위권 대학에 들어갔으니 학벌로서도 상위 카스트다. 성별이 남자니 앞으론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일단 더 상위다. 

 그렇지만 난 항상 아웃사이더였다. 초중고 12년 간 찢어지게 가난했을 때, 내가 몸이 지극히 약했을 때, 내가 괴롭힘에 대해 아무런 저항을 못했을 때, 난 학교라는 시스템에 도저히 적응 할 수 없었다. 친구 하나 못 사귀었고, 하루도 한순간도 빠짐없이 괴롭힘을 받았다. 부모가 아무런 돈이 없고 몸이 약하고 공부까지 못하면 학교라는 계급제 사회에선 하층민이 될 수밖에 없다. 대학을 오고 나선 스스로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학교 내에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꺼림직했고, 그 인간관계가 자연스레 학벌이 된다는 것은 으스스했다. 한 번도 학과 사람들과 어울린 적이 없고, 한 번도 학교 사람과 제대로 대화해본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자유(경험, 의지?)가 있었다. 안전함에 대한, 편함에 대한 미련이 없고 언제든 버릴 수 있다라고 생각했기에 남들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학과 교수 사무실에서 그 사람이 말도 안되는 문장을 말할 때 아무런 주저없이 재떨이를 창문으로 던지고 나올 수 있었다. 모두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수업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다. 덕분에 성적표는 난장판이 되었지만 그것도 나름 유쾌했다. 

 앞으로도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행동했기에 관성 때문에 한동안은 더 그럴 것이다. 지금은 내가 잃을 게 너무 많기에 조심스레 행동하기도 한다. 몸이 안 좋으니 귀찮기도 하다. 글을 써도 내가 조리맞게 썼는지 다시 확인할 기운도 확신도 없다. 5년 생존률이 60% 정도이고, 10년 내에 죽을 가능성은 70%에 가까우니까 시간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에 먹는 알약이 20개도 넘는 것 같은데, 내장기관 전체가 나쁘니까 오늘내일일지도 모른다. 건강이란 걸 카스트에 넣는다면 난 확실히 하위 계층에 들어갈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멋대로 행동하는 거라고 한다. 그럼 나는 되묻는다. 당신은 시간이 얼마나 남았냐고. 내가 10년이면, 당신은 70년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내일일 수 있고, 어쩌면 내가 50년일 수 있다. 난 죽는 마지막 순간 내 얼굴을 보면서 내가 위선자였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내가 얻은 얄팍한 논리로 내 삶에 대해 스스로 변명하고 싶지도 않다. 잘못이란 걸 인정하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뻔뻔하게 굴고 싶지 않다. 

 죽는 게 두렵다. 어두운 석양을 맞으며 몸을 떤다. 철길 위에 앉아 곧 다가오는 기차에 치어죽을 걸 기다리는 기분이다. 그렇지만 내가 따돌림 받으며 되뇌였던 말 - 너희들처럼 살고 싶지는 않아. 그렇게 사는 건 죽는 것보다 훨씬 무섭다. 폭력이든 외면이든, 피해자에겐 어느 쪽이든 똑같이 피가 흐른다는 걸 모르는 걸까. 나도 수없이 외면하고 있지만, 최소한 그게 얼마나 아플진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변명이 안되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알고자 고치고자 노력하는 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알고 있으니까. 

 글이 어중간하게 되었는데, 언젠가 한 번 다시 곱씹어 봐야겠다. 결국 이런 질문으로 귀착되는 것 같다- "내가 진정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 혹은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무엇인가? 내가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가?" 나는 내가 옳다고 느끼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학벌이나 재산에 의존해 치사하게 굴고 싶지 않다. 내가 가진 것들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내가 진정으로 가진 것 - 고치고자 하는 의지, 알고 싶어하는 욕구, 동감하고자 하는 가슴을.

 

덧글

  • 2009/09/05 20:4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스플렌다 2009/09/06 14:46 # 답글

    여러 번이고 곱씹으며 읽게 되는 글.
    aeon님의 포스트는 뜨끔하게 되요. 여러번.
  • aeon 2009/09/06 15:27 #

    앗 스플렌다님이 좋게 봐주신다니 감사해요! 후유소요님이 쓰신 글 덕분에 생각난 책에 제 생각을 조금 덧붙였을 뿐인데... ㅠ_ㅠ 열심히 쓸테니 잘 부탁드려요(..)
  • 후유소요 2009/09/08 00:16 # 답글

    참 자기가 있는 경계 너머를 보기가 쉽지 않아요.;ㅅ; 잘 읽었습니다 'ㅁ'*
  • aeon 2009/09/08 05:58 #

    뭘요. 후유소요님 덕분에 이것저것 생각하게 되어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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