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과의 대화에서 몇 가지 생각난 것 추가: 6


진화심리학 관련하여.
제가 제대로 모르는 분야지만 알고자 노력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몇 마디 적습니다. 대화 당시엔 생각이 나지 않은 부분에 대해 말씀드려야 할 필요성을 느껴서요. ^^;; 이 글 안엔 대화 중에 나온 것도 있고 생각난 김에 덧붙이는 것도 있습니다.


1. 진화심리학은 <가까운 원인> 보단 <근본적인 원인>을 추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자는 남성에 비해 상대편의 경제적 상황을 더 보는 경향이 있다> 라는 말을 내놓았다고 합시다. 이건 전체적인 경향이 그렇다는 것이지 이걸로 모든 여성은 그럴 것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보겠지요. 가까운 원인, 즉 근인은 엄청나게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2. 결정론으로서의 기능

진화심리학자들은 유전과 환경의 영향을 동시에 연구합니다.

그렇지만 가령 폭력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발생했다고 합시다. 그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무조건 폭력적인 사람이 된다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유발되지 않을 수도 있고 혹은 다른 유전자 때문에 제어가 될 수도 있지요. 후자 같은 경우는 인터넷창에 오류가 나지만 결국 디버그 기능을 통해 시스템상의 오류를 치료하는 컴퓨터를 생각하시면 쉽겠습니다.

현대 사회를 통해 볼까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남성의 유전자와 몇백년 전의 유전자는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폭력성은 극적으로 달라졌습니다. '거의 동일한 유전자' 가 어떻게 다르게 발현되었는지 매우 명확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노르웨이에 사는 사람들은 바이킹의 후손입니다만 그 후손들이 지금 도끼를 들고 전세계인을 도륙내고 있진 않습니다. 이 사례들로만 봐도 생물학적 결정론이 아니란 걸 잘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이상한 논리의 합리화

물론 그렇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여자는 아이에 적합한 심리적 기제와 육체를 가지고 있으니 애나 키워야 하고, 남자는 바람끼가 있으니 바람 피우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합리화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요.

"이런 성향을 띤다"와 "이렇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는 차원이 다른 논의입니다.
그건
"사과는 붉다"가 "붉은 게 당연하기 때문에 사과는 옳다, 그러므로 사과는 붉어야 한다" 라는 주장으로 번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사용되기 때문에 진화심리학은 옳지 않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에서 사용성을 문제로 옳지 않다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심히 옳지 않습니다.

불이나 전기도 사람을 고문하는 데 쓸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얼마나 올바르게 사용하느냐이지요. 불이나 전기의 존재 자체가 문제가 되진 않잖습니까. ^^;;



진화적인 결과는 결코 유쾌하지 않고 그 모습은 정치적으로도 올바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만은 부정하기 어렵지요.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아는 것, 즉 "이러해야 한다"라는 도덕적 명제의 출발은 "우리는 지금은 이렇다"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화심리학의 존재 이유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데 있지 않을까요.


ps. 지적 환영합니다. 다만 공격적인 댓글은 지우겠습니다.

덧글

  • 기우 2011/04/08 08:28 # 답글

    우리가 정말 이렇다는 이야기를 할 때 그 생각에는 우리는 이래야 한다는 믿음이 얽혀 들어갑니다. 사람의 폭력성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폭력이란 무엇인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야 더 폭력적인가를 물을 수 있지요. 앉아서 마을에 미사일을 날리는 단추를 누르는 사람과 도끼를 들고 대 여섯 사람을 베어 죽이는 바이킹 가운데 누가 더 폭력적일까요.
  • jane 2011/04/08 08:56 #

    우리가 정말 이렇다는 이야기를 할 때 그 생각에는 우리는 이래야 한다는 믿음이 얽혀 들어갑니다.
    :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윈이 우리는 원숭이부터 진화했다라고 했을 때 우리는 원숭이어야 한다라는 믿음이 탄생한 건 아니잖습니까. 사실 믿음이 얽혀들어가는 건 어느 정도 맞는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그 믿음이 얽혀들어간다는 것 때문에 우리의 지금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학문을 포기해야겠습니까?
    위에도 썼다시피 전 우리의 지금 현재는 이렇다, 라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우리는 이래야 한다라는 명제를 보다 잘 추구할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현상이 어떤지 모르는데 바람직한 모습이 되기 위한 해결책을 제대로 제시할 수 있겠습니까.

    확실히 그 부분에 대해선 저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구의 이야기를 꺼내놓아 죄송합니다만 제가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역사는 그쪽밖에 없어서) 서로 치고받기에 정신이 없었던 서구 사회를 볼 때, 숲속 오솔길도 제대로 못 걷는 사회에서 밤길을 활보할 수 있는 사회로 변한 건 폭력성이 많이 사라진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기우님이 지적하신 부분은 폭력성을 어떤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에 따라 변화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숫자"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현대는 확실히 덜 폭력적입니다. 구석기 시대의 오금이 저리는 전쟁에 의한 남성 사망률을 보시면 더 분명하게 아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 기우 2011/04/08 10:04 #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렇게 선언하는 걸로 쉽게 풀리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도덕적 명제와 편견과 과학 사이를 그렇게 쉽게 나눌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시는 게 걱정스러워 한 말입니다.
    그리고 서구사회 이야기를 하시지만 서구가 다른 세계에 팔아치우는 엄청난 무기 장사와 그 수요와 공급을 보면 정말 세상은 평화로워졌나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하게 재고 총기를 왕창 팔고 밤길을 맘 놓고 걷는 유럽인 직장인과 그 총에 맞아 죽는 나라 사람들이 같은 시간대, 같은 별에 산다는 것을 생각하시길...
  • jane 2011/04/08 12:49 #

    그런 편견을 피하기 위해 진화심리학자들은 학자 사이에서도 굉장히 노력하는 편입니다. 유명한 진화심리학자 거의 한 명 당 한 권씩 대중서를 내 그 오해를 풀려고 하지요. 이 정도로 대중 설득에 진력을 다하는 학문은 전 아직까지 한 분야도 못봤습니다. ^^;; 이걸로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증거와 논리를 산처럼 내놓은 것외에 학문이 할 수 있는 설득방법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지요. 지적하신대로 쉽게 나눌 수는 결코 없는 노릇입니다만 진화심리학자 입장에서는 할 수 잇는 모든 수단을 다 쓰고 있다고 말해도 과연이 아닐 정도입니다.

    서구가 팔아치우는 엄청난 무기 장사는 기가 질릴 정도지요. 그러나 세상이 정말 평화로워졌나, 라고 물으신다면 정말로 평화로워졌다라는 말외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지금 시대의 잔혹한 제노사이드도 중세의 전쟁엔 발끝에도 못 미칩니다. 그건 인구 비례로 보면 확연하지요.
    현대 사회에 문제가 없다라는 말이 아닙니다. 서구 쪽으로 가서 핀트가 좀 어긋난 느낌이 있는데, 현대 사회의 문제점은 과거에 비하면 분명 많이 해결된 축에 속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 현대 사회의 문제점도 엄청나지요. 그러나 지금 '문제점'으로 지적받는 게 예전엔 문제도 아니었다는 점도 고려해주셨으면...
  • 지뇽뇽 2011/04/29 11:51 # 답글

    와 오해하기 쉬운 것들이 잘 정리되어 있네요 :) 저도 누가 오해하시면 잘 대답하는 연습 좀 해야 할 듯ㅎㅎ
  • jane 2011/04/29 13:48 #

    심리학과 분이 잘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취미로 보는 것이니 너무 과히 질타는 말아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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