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저키스트로서의 인문학도 5

지난번에 오늘 읽은 명언에서 이미 이야기했듯이 본인은 인문학도이다. 인문학도답게(정확히는 사학도답게), 사료를 채취하며 번역하고 글을 쓰고 분석하며 돈은 가치가 없을 정도로 벌어왔다. 이건 회의축에도 들지 못하는, 인문학도로서는 달갑게 받아들여야 하는 사회적 상황이다. 장래의 내가 아무리 잘해봐도 서울 시내 비둘기의 영양상태보다 못할 것이란 것도 입을 꾹 다물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영양상태를 가진 인간으로서, 시대의 지식인이란 미명 하에 사회발전에 누구보다 앞장 서 때론 굶어죽고, 때론 할복이라도 하는 것을 대중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 또한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이런 건 이젠 별로 아무렇지도 않다. 굶어죽더라도 일단 선비 아니겠는가.

본인이 든 회의는 인문학도가 너무 선택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대부분의 인문학도는 수학은 대학에 오면 손을 놓고 경제학의 기본 개념도 이해하지 못하며 과학 전반의 주제는커녕 용어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 인문학 교수들 중 많은 수는 "자신이 모르는" 사항에 대해 논평하길 그다지 주저하지 않는다. 본인은 심지어 진화론과 창조론의 구분조차 못하는 교수님을 꽤 많이 봐왔다. 이건 내 스승님들도 마찬가지고, 용기가 아니라 짤릴 각오를 하고 다른 공부도 하시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가 조선 시대 제주도가 이런 곳이었구나 싶을 정도로 취급 받았던 적도 있다. 본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하고 있는 공부만 해도 보르헤스가 100명 온다고 해도 외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양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공부까지 하라는 건 무리한 주문 아닌가.

그렇지만 그게 '옳은' 주문이란 것에 좌절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편하게 자신을 괴롭히는 것뿐만 아니라 괴롭게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야말로 매저키스트로서의 올바른 자세 아니겠는가! 그런 면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명확한 방식으로 근접 학문을 흡수하며 괴로워 할 수 있는지 여러분의 고견을 부탁드린다. 

덧글

  • 지뇽뇽 2011/08/05 12:51 # 답글

    음... 먼가 반성하게 되네요ㅎㅎㅎ 심리학이 항상 과학이랑 인문학의 경계에 있는 느낌이라 (점점 과학쪽에 치우쳐가고 있는 느낌이지만..) 공감도 되고요.. 인문학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ㅎㅎ 참고할만한 좋은 글 많이 올려주셔요!
  • jane 2011/08/06 15:06 #

    네 노력하겠습니다! 심리학은 과학쪽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인문학적 방법론은 이제 거의 안 쓰는 것도 같고요.

    이과생들 존경합니다.
  • 2011/09/24 01:10 # 답글

    안녕하세요 jane님. 저도 학부 전공 중 하나로 역사학을 하는 입장에서 구구절절 와닿는 말씀이네요. 솔직히 역사학이 왜 사회과학이 아니라 인문학으로 분류되어야 하는지부터가 의문이지만, 한국 현실에서는 ㅜㅜ;; 역사학에서 하나의 체계화된 방법론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아무 이야기나 들이밀어도 되는 지적태만을 용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왜 심리학, 뇌과학, 진화심리학, 사회학, 언어학 같은 분야에서의 연구성과와 방법론을 참고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역사학 공부만 해도 충분히 벅차긴 합니다만;; 블로그를 훝어 보며 든 생각이 jane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저도 똑같이 공감하는 문제들인지라 앞으로 좋은 생각들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 jane 2011/09/24 08:30 #

    저 유배 아직 안 풀렸으니까 핀님은 절대 저처럼 행동하지 마셔요. ㅠㅠ 저도 역사학은 사회과학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현실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그러니 음. 역사학에선 체계화된 방법론이야 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게 다는 절대 아니죠. -.- 사료 분석이란 어엿한 방법론이 있지만, 통계학도 배우지 않고 사료 모은다는 게 솔직히 좀 그렇지 않습니까(물론 본인도 통계학 모릅니다.ㅠㅠ). 왜 참고하지 않느냐에 대해선 전 확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흡수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지요. 심지어 (읽어보셨을진 모르지만) 총균쇠에 대해서도 모르는 분들도 많고, 읽지도 않고 반감을 가지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도 핀님의 블로그 가보았습니다. 전 핀님 정도의 글을 쓸 정도로 능력자는 아닙니다만(...) 앞으로도 좋은 생각 나누고 싶습니다!
  • santalinus 2015/02/19 14:24 #

    많이 뒷북이긴 합니다만.... 어떤 곳에서는 사회과학에 포함시킵니다. 인도 네루대학교에선 School of Social Science안에 Center for Histrical Studies가 속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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