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의 정신 0

이 글은 후지따 쇼오조오의 "이탈의 정신"이란 글의 오마쥬이다. 비슷한 부분이 나올 수 밖에 없으며(사실 거의 같으며), 차라리 <전체주의의 시대경험>을 찾아서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p204~208.




 나와 당신을 '우리'로 만드는 단체의식은 좋든 나쁘든 사람을 얽매이며 무언의 압력을 가한다. 그 압력은 형체가 없는 만큼 더 맞서 싸우기 어려운 형태의 탄압이다.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데 어떻게 저항할 방법을 궁리해내겠는가? 얼핏 실체가 있는 듯한 사회적 결속도 그 실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결혼을 한 사람들은 다 이해하겠지만, 결혼은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니다(적어도 한국에서는). 상대방 가족(대개는 친척까지 포함해서)에 대해 원시부족처럼 서로의 눈치를 보며, 게임이론을 뺨칠 만큼 복잡한 두뇌싸움이 오고간다. 게다가 플레이어가 한두명이 아니다. 포카를 한다면 차라리 내가 무슨 게임을 하고 있는질 아니까 패하더라도 쉽게 납득될 것이다. 그러나 게임의 법칙도 무슨 게임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도대체 무슨 패를 내면 된단 말인가? 

 우리는 집단주의적인 단체의식에서 한발짝 물러나 내 자신의 상황을 '나'의 입장에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 타인의 입장에서 서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내게 닥친 일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이것은 이기주의적인 생각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생각은 자기반성, 거창하게 말하면 자기성찰 쪽에 가깝다.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데 단체가 어떻게 성립하는가. 단체가 세포분열하며 개인을 이루는 것이 아닌 이상, 단체의 기본단위가 개인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어떤 단체는 태어날 때부터 속한 것이며 평생 벗어날 수 없다. 가족, 인종 등이 그런 단체이다. 그러나 그런 단체에서조차도 우리는 이탈할, 기꺼이 아웃사이더가 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탈할 수도 없는 단체이더라도, 이탈할 가능성조차 탐색하지 않는다면 필연적으로 폐쇄적으로 되기 마련이며, 폐쇄적인 단체는 그 개인에게도 결코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이런 단체는 속하라고 하는 강요가 자연적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훨씬 무서운 집단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자연스러운 강요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노력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집단의 지독해지기 쉬운 단체의식을 희석화함으로서 집단 전체를 건전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떤 집단의 일부이고자 하는 적극성이 부여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그 집단에서 이탈할 자유가 철저하게 보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 후지따 쇼오조오가 "이탈의 정신"에서 말했듯이, '이혼'의 자유라는 원칙적 위기가 끊임없이 내포할 때에만 '결혼'에 있어 결합의 적극성이 존재할 수 있다. 집단의 탄압을 거부하고 기꺼이 바깥으로 나갈 준비가 되어있는 개인이야말로 집단의 진정한 구성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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