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다시 쓰지 않을 나의 이야기. 6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대략 2km 떨어진 대학병원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비뇨기과 간호사였고 아버지는 정치범이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뭘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머니가 날 낳은지 며칠 안 되어 다시 직장에 나갔어야 할 만큼 우리집은 가난했다. 태어난 뒤 몇 년은 당연한 일이지만 기억 속에 없다. 나의 첫 기억은 아주 희미한, 창고에서 놀고 있는 나의 모습을 창고벽에 달린 거울 속에서 발견했을 때이다. 매우 짧은 순간만 기억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분명히 기억한다. 피인지 담요인지 모르지만 붉은 무언가를 뒤집어쓰고 있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네 살부터 다섯 살엔 차이나타운 근처의 빈민가에서 살았다. 아내를 패는 남자(너무 많았다)들, 총소리(정말 가끔씩 들렸다), 양을 문 개(우리집 개였다), 보신탕이 된 내 동무(옆집 개였다), 부두 가의 바다향기(결코 좋다는 할 수 없는), 때때로 항구로 몸을 던지는 여자들(주로 남자 문제였다, 적어도 난 그렇게 들었다), 집세를 내지 못해 연탄으로 자살한 일가족(우리집 근처의 일이었다) 등 그곳에서 난 볼 수 있는 것은 다 보았다. 연탄이 떨어져 추워서 개를 끌어 안고 잔 적도 있고, 반찬이 없어 며칠 간 밥과 간장만 먹어야 했을 때도 있었다. 배가 너무 고파 울면, 외할아버지가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와서 나에게 짜장면을 사주었다. 외할아버지가 돈벌이를 잘 못 한다는 걸 그 어린 시절에도 인식했던 나는 되도록이면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커서 고생한 건 잊을 수 있을지 모른다. 어릴 때 고생한 것도 잊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배가 고파서 울었던 경험은 절대로 잊을 수 없다. 

 온몸에 피가 나도록 맞아 코피 나고, 멍 들고, 땅바닥에 긁힌 상처가 가득한 팔을 가지고 다락방으로 도망친 기억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외할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다락방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움직일 기운이 없어서 다락방 구석에 쪼그려누운 뒤에 정신을 잃었다. 외할아버지가 날 끌고 내려와 안아주고, 상처에 천을 대주고, 평안남도의 자장가를 들려주고, 미음을 먹여주었다. 그리고 갓 태어난 강아지 몇 마리를 내 곁에 놓아주었다. 눈도 못 뜨는 강아지들이 내 곁에서 꼼지락거리자 어린아이의 마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낚시를 다닌 것도 기억에 남는다. 꽃놀이를 다닌 것도, 공원에 산책을 떠난 것도, 부둣가를 걸었던 기억도, 세뱃돈으로 과자나 쮸쮸바를 사먹은 것도, 언덕길에서 마구 달렸던 것도 생각이 난다. 여섯살 때까지, 굶은 일은 많았지만 그래도 따스했다. 짜장면을 받으면 반드시 우리집 개들과 반을 나누어 먹었다(이거야말로 민주주의 아닌가). 쮸쮸바도 반으로, 솔직히 말하면 반보다 약간 더 내가 먹긴 했지만, 어쨌거나 반으로 나눠 개들과 나눠 먹었다. 하드코어한 동물 애호가라도 어린 시절 이틀 넘게 굶은 상태에서 짜장면을 개와 반으로 나눠먹은 경험은 없을 것이다. 내가 동물애호가란 뜻이 아니라, 내게 있어 우리집 개란 가족 이상의 존재였다는 것이다. 사실 우린 마피아였다. 차이나타운에서 나와 검둥이와 독고를 건드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독고는 늙어죽고, 검둥이는 외할머니가 버려버리고, 나는 인천을 나와 광명으로 이사갔다.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 것이다. 유치원을 다닌 것과 잠자리채를 기가 막히게 잘 사용한 것 외엔 그렇게 기억에 남는 건 없다. 별 탈 없이 굶지 않고 잘 먹고 살 수 있었다. 굶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경험해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모를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다이어트 하기 위해 하루이틀 먹지 않는 건, 사전적 의미에선 굶은 게 되지만 결코 굶은 경험을 한 게 아니다. 쌀독에 아무것도 없는 막막함, 남이 남겨놓은 짜장면을 주워먹는 것, 그런 게 굶주림이다.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지옥이 시작되었다.

 12년간 학교에서 한 번도 화장실을 가본 적이 없다. 급식을 먹어본 적도 없다. 고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의 육체적 고통을 겪지 않은 날도 없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내 주변엔 아무도 앉지 않았다. 물도 마실 수 없었다. 책가방과 책은 찢겼다. 아침은 공포였고 점심은 고통이었으며 저녁은 다음날 아침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하루에 세 시간 이상 잔 적도 없다. 12년간. 나의 유일한 낙은 다들 학원을 가느라 아무도 없는 놀이터 구석에서 흙놀이를 하는 것뿐이었다. 고통을 잊기 위해 미친듯이 책을 읽었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읽었다. 

 재수학원을 다니고, 다시 시험을 치고, 놀았다. 그때부터 난 재미있는 사람들을 잔뜩 만나게 되었다. 그 사람들에 대해 일일히 적으면 한도 끝도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생활 침해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말도 하지 않겠다. 



 지옥 이후로 나는 운이 좋다. 최고의 선생님들에게 배웠고, 그들 모두에게서 인정받았다. 돈도 부족함이 없이 쓸 수 있고, 왠만한 사람보다 넓은 공간을 자유롭게 쓰고 있다. 좋은 사람들도 많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 가지 점에서 좀 부족한 것 같긴 한데, 그건 어차피 내게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다. 그 외를 제외하면, 더 바랄 게 없어야 할 환경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아직 낡은 내 자신을 벗어던지지 못했다. 그래. 아직 던지지 못했다. 욕심도 무엇도. 난 상을 받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지만 - 귀찮기만 하다 - 분명한 소원이 두 개 있다. 첫 번째, 나의 열등감을 집어 태워버리고 싶다. 두 번째, 내가 나에게 인정을 받았으면 한다. 타인의 시선보다 훨씬 두려운 건 나 자신의 기준이기에.

덧글

  • 2012/03/26 13:1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jane 2012/03/27 09:09 #

    포스라뇨 ㅎㅎ 이런저련 경험을 했을 뿐이지요. 경험 때문인지 어떤진 모르겠지만 전 아직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좋은 건지 나쁜 건진 모르겠지만요.

    타인의 시선 두렵죠. 그러나 타인의 시선을 두렵게 느끼게 만드는 건 나 자신의 기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비공개님이 인정해주신다니 기뻐요! ㅠㅠ
  • 2012/03/28 02:0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jane 2012/03/28 23:00 #

    응. 지금은 충분히 호의적인데, 내가 제대로 받아들이질 못하는 것뿐야. ^^
  • Entropy 2012/03/29 10:43 # 답글

    ... 후덜덜 ... ... ....... 저는 너무 편하게 살아와서.
    뭐 저도 매일 따돌림은 당했습니다 (특히 중학교때).. 아니 뭐 그땐 제가 상당히 징징이 심했죠.
    정말 고통스럽게 자라오셨네요 ... ㅠ 하지만 그것을 딛고 일어서신 만큼,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겁니다! :D
  • jane 2012/03/29 23:24 #

    하하 ^^; 후덜덜할 것까지야 있나요.
    따돌림의 경험도 잊기 힘든 것 중 하나지요. 그런데, 저의 경우 제일 어이 없었던 것은 절 잠정적인 범죄자 - 예비 연쇄살인자 - 취급한 거였습니다. -_-;;; 피해자들이 가해자가 되기 쉽다나요.

    꽤 고생하며 자라온 게 오히려 도움이 될 때도 있습니다. 남을 최대한 이해해보려고 하거든요. 물론, 실패할 때가 대부분이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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