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에 대한 단상 3

 사학도든 교수든 상관 없이 사학에 관련된 사람들이면 누구든 사학이 과거의 현상을 재구성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그러나 역사학은 본질적으로 그런 걸 다루는 학문이 아니다. 역사학이 다루는 건 '자료로부터 추출하여 현재 가지고 있는 정보에서 추측한, 과거의 현상에 가까울 가능성이 가장 있는 예들'이다. 

 어떤 사료도, 어떤 고고학적 증거도, 심지어 증인이나 당사자도 역사가가 묘사하고자 하는 어떤 사건(혹은 현상, 경향 등 뭐든 좋다)을 다시 구성하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 물리학적 법칙이 가로막고 있다는 이유뿐만이 아니라, 사건 발생 후 일정 시간(거의 즉시)이 지나면 그 사건에 대한 정보는 반드시 결손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손된 정보가 어떤 것인지, 중요도는 어느 정도인지 남은 자료로부터 파악하는 수밖에 없다. 많은 경우 결손된 정보가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일도 많고, 정보를 잘못 해석하는 경우도 종종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중세의 의사와 현대의 의사가 똑같은 증상의 환자를 진료한다고 하면 그 각각의 진단과 치료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즉, 우리는 현재의 시각에서 현재 얻은 정보를 통해 과거의 현상을 추정해본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와 그 정보를 처리하는 힘은 우리 능력의 한계에 고정되어 있다. 말하자면 '오리처럼 걷고, 오리 같이 울고, 오리 비슷한 그림자를 가진' 물체라면 오리라고 판단하는 셈이다. 

 나는 결코 역사학이 객관성 따윈 신경쓰지 않는 학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오리는 오리다. 왜냐하면 오리는 오리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건 동어반복밖에 안되지만 위의 예처럼 논리적으로 추측한다면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예가 성립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학자들이 추구해야 할 것은 '합리적인 예시들'이다. 그 합리적인 예시를 만들기 위해 '진실은 단 하나만 성립한다'라는 가정을 들고 가는 건 좋다. 그러나 보다 생산적인 자세는 수많은 가능성의 존재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보다 겸허하게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덧글

  • 역사관심 2014/01/23 15:28 # 답글

    비슷한 생각을 정리해서 적고 있는 중인데 끝구절에 특히 공감합니다.
  • jane 2014/01/26 11:26 #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역사관심님의 글은 대단해요!
  • 역사관심 2014/01/26 12:35 #

    별말씀을요 ...창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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